주니어가 놓치는 것 — 프레이밍 vs 실행
잘하는 주니어랑 탁월한 주니어의 차이
채용 면접을 많이 하다 보면 반복적으로 보이는 패턴이 있어요.
열심히 준비한 포트폴리오, 인터뷰 진행 경험, 어피니티 다이어그램, 리서치 보고서 — 다 있어요. 근데 "이 리서치에서 본인이 제일 고민했던 부분이 뭐였어요?"라고 물으면 대답이 막혀요.
왜 그럴까 생각해봤더니, 이게 답이에요. 시니어가 잡아줬으니까 시킨 대로 한 거예요. 본인이 뭘 했는지 사실 잘 몰라요.
이 문장이 좀 차갑게 들릴 수 있는데, 제가 지적하려는 게 아니에요. 구조적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거거든요. 근데 이걸 인지하지 못하면 계속 그 단계에 머물게 돼요.
결론부터 말할게요. 리서치를 잘 한다는 것은 실행을 잘 한다는 말이 아니에요.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떤 리서치가 필요한지, 혹은 리서치가 필요하지 않은지를 판단하는 힘. 그게 진짜 리서치 역량이에요.
프레이밍이 뭔데요?
리서치는 크게 두 단계로 나뉘어요.
하나는 프레이밍 — 이 리서치가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 어떤 방법으로, 어떤 대상에게 물어야 하는가를 결정하는 것. 리서치의 방향과 범위를 잡는 거예요.
다른 하나는 실행 — 스크립트 짜기, 인터뷰 진행, 데이터 정리, 인사이트 작성.
주니어는 주로 실행에서 기여해요. 그게 나쁜 게 아니에요. 당연한 거예요. 근데 여기서 함정이 있어요. 실행을 잘 하다 보면 리서치를 잘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예요. 인터뷰를 부드럽게 진행하고, 데이터 정리도 깔끔하게 하고, 보고서도 잘 쓰는데 — 근데 어디서 막히냐면, 혼자 리서치를 시작해야 할 때예요.
"뭘 물어봐야 하지?"가 아니라 "지금 이 상황에서 리서치가 필요한가, 어떤 리서치가 필요한가"를 판단하는 힘. 이게 프레이밍이에요. 그리고 이게 시니어의 핵심 역량이에요.
프레이밍 vs 실행, 뭐가 다른가요?
쉽게 비교하면 이래요. 식당에서 음식 만드는 것에 비유해볼게요. 실행은 레시피를 보고 요리를 잘 만드는 거예요. 프레이밍은 오늘 손님이 어떤 걸 원하는지, 이 재료로 뭘 만드는 게 맞는지, 아니면 아예 오늘은 다른 메뉴가 필요한지를 판단하는 거예요.
레시피를 완벽하게 따라 만들 줄 아는 것과, 상황에 맞는 메뉴를 기획할 줄 아는 것. 둘 다 필요하지만 완전히 다른 능력이에요.
리서치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인터뷰 스크립트를 잘 만들고 진행을 잘 하는 것(실행)과, "지금 우리 팀에 필요한 게 인터뷰인지, 설문인지, 아니면 데이터 분석으로 충분한지"를 판단하는 것(프레이밍)은 달라요.
실행은 누구나 배울 수 있어요. 프레이밍은 다르거든요.
인터뷰 진행법은 배울 수 있어요. 몇 번 해보면 늘어요. 좋은 스크립트 구조도 배울 수 있어요. 어피니티 다이어그램도 방법론 공부하면 됩니다.
근데 프레이밍은 다른 종류의 역량이에요. "지금 팀이 이 의사결정을 하려고 하는데, 필요한 게 정성 리서치냐 정량이냐, 굳이 리서치가 필요한 순간인가, 리서치를 하면 어떤 질문에 답을 줄 수 있고 어떤 건 답을 못 주는가" — 이걸 판단하는 건 맥락 감각이 있어야 해요.
그 맥락 감각이 그냥 경험이 쌓인다고 생기는 게 아니에요. 일부러 프레이밍 과정에 개입해보려고 해야 생겨요.
주니어가 성장하는 실질적인 방법이 여기 있어요. 프로젝트에서 "이 리서치 왜 하는 거예요?", "이 질문으로 우리가 무엇을 결정할 수 있어요?", "이 대상자 기준이 맞는 건가요?" — 이걸 물어보기 시작하는 거예요. 귀찮게 구는 게 아니에요. 그게 프레이밍 근육을 키우는 방법이거든요.
프레이밍이 잘못되면 어떤 일이 생겨요?
한 팀에서 이런 일이 있었어요. 앱의 특정 기능 사용률이 낮아서 리서치를 요청했어요. 팀이 원한 건 "이 기능을 어떻게 개선하면 사용률이 오를까"였거든요.
근데 실제로 인터뷰를 해보니, 사람들이 그 기능을 안 쓰는 이유가 기능 자체의 문제가 아니었어요. 그 기능까지 접근하는 네비게이션이 복잡해서 존재 자체를 모르는 거였어요. 그러니까 기능을 개선해봤자 효과가 없는 상황이었던 거예요.
프레이밍이 잘못된 거예요. "기능 개선 리서치"로 잡힌 거예요. 근데 실제로 필요했던 건 "이 기능이 왜 발견되지 않는가"를 파는 네비게이션 리서치였거든요. 이 차이를 실사 전에 짚어냈다면, 훨씬 다른 방향으로 설계됐을 거예요.
프레이밍을 잘못 잡으면 리서치 자체는 잘 돌아가도 쓸모없는 결과가 나와요. 그래서 실행 전에 "이 리서치가 맞는 리서치인가"를 묻는 게 중요한 거예요.
더 심각한 경우도 있어요. 프레이밍이 잘못된 채로 리서치가 진행되면, 그 결과를 바탕으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거든요. 리서치 결과가 나왔다는 이유로 팀이 안심하게 되는 거예요. "리서치 했으니까 괜찮겠지"라는 착각. 근데 잘못된 질문에 대한 답은 아무리 정확해도 방향이 틀린 거예요. 이게 프레이밍이 실행보다 선행되어야 하는 이유예요.
같이 6년째인 '꼬꼬마 주니어' 얘기
예전에 팀에 처음 합류한 주니어 한 명이 있었어요. 연차도 없고, 학위도 특별한 게 없었어요. 근데 뽑은 이유가 있었어요.
면접에서 제가 리서치 케이스를 줬는데, 다들 "어떻게 조사할까요"로 가는 와중에 이 사람은 "이 리서치에서 진짜 알고 싶은 게 뭔가요?"라고 먼저 물었어요. 문제에 핵심을 찍는 힘이 있었던 거예요.
그게 6년 됐어요. 지금은 제가 없어도 혼자 리서치 방향을 잡거든요.
연차나 학위보다 이게 더 중요해요. 생각하는 힘이 포트폴리오보다 중요한 이유가 여기 있어요. 잘 정리된 포트폴리오는 실행 능력을 보여줘요. 근데 프레이밍 힘은 대화에서 드러나거든요.
이게 포인트예요. 면접에서 잘 만든 산출물보다, "이 리서치에서 뭘 결정하려고 했어요?"라는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는지를 보면 돼요.
그 주니어가 시간이 지나면서 달라진 게 뭔지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요. 처음엔 "이 리서치 왜 해요?"를 묻는 주니어였어요. 2년 정도 지나니까 "이 리서치를 안 해도 되는 상황인지 먼저 확인해도 될까요?"를 물어보기 시작했어요. 그게 진짜 프레이밍 역량이 생겼다는 신호였어요. 리서치를 해야 한다는 전제 자체에 의문을 던지는 단계가 된 거예요.
프레이밍 근육을 키우는 실전 연습 세 가지
프레이밍이 중요한 건 알겠는데, 그럼 어떻게 키워요?
경험상 이 세 가지가 가장 빠른 방법이에요.
하나, 매 프로젝트에서 "왜"를 한 번 더 물어요. 팀에서 리서치 의뢰가 들어오면 무조건 의뢰서에 있는 내용을 설계의 출발점으로 삼는 경우가 많아요. 근데 의뢰서에 적힌 "알고 싶은 것"이 진짜 핵심이 아닌 경우가 꽤 있거든요. "이 결과를 어떻게 쓸 건가요?", "이 리서치 결과로 어떤 의사결정을 할 예정인가요?" — 이 질문을 먼저 하는 습관을 들이면 프레이밍 감각이 빠르게 붙어요.
둘, 리서치 전에 "이 리서치를 하지 않으면?"을 자문해요. 이 질문이 강력한 이유가, 리서치를 안 해도 이미 알고 있는 정보를 리서치로 확인하는 낭비를 잡아줘요. 진짜 모르는 것, 진짜 판단이 필요한 것을 리서치로 해야 하거든요. 이미 알고 있는 걸 리서치로 검증하는 건 시간 낭비예요.
셋, 리서치 종료 후 "이 결과로 팀이 뭘 결정했는가"를 추적해요. 리서치를 넘기면 끝이 아니에요. 그 결과가 실제 의사결정에 어떻게 쓰였는지 피드백을 받으면, 다음에 프레이밍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감각이 쌓여요. 결과가 무시됐다면 — 그건 프레이밍이 어긋났다는 신호예요.
리서치를 거절하는 것도 프레이밍이에요
한 가지 더 있어요. 프레이밍의 결과가 "이 리서치는 하지 않는 게 맞다"가 될 수도 있어요.
팀에서 리서치 요청이 왔는데, 이미 비슷한 인사이트가 3개월 전 리서치에서 나왔어요. 팀이 그걸 모르고 새로 요청한 거예요. 이때 그냥 리서치를 진행하는 게 맞을까요? 프레이밍을 제대로 하는 리서처는 "사실 지난 리서치에서 이 부분이 이미 나왔는데, 추가로 알아야 할 게 있으신 건가요?"라고 먼저 물어봐요.
이게 때로는 "리서치 안 해도 됩니다"가 결론이 되기도 해요. 이걸 두려워하지 않아야 해요. 리서처가 팀을 위한 진짜 기여는 리서치를 많이 하는 게 아니라, 리서치가 필요한 타이밍에 필요한 리서치를 하는 거거든요.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는 건 하나예요. 다음 프로젝트에서 설계를 시작하기 전에, "이 리서치로 팀이 어떤 결정을 하려고 하는가"를 딱 한 문장으로 써보세요. 그 한 문장이 정확하게 써지면 설계가 훨씬 쉬워져요. 써지지 않으면 — 아직 프레이밍이 덜 된 거예요.
그리고 그 문장을 리서치 의뢰를 한 팀과 공유해보세요. "제가 이해한 게 맞나요?"라고 물어보는 거예요. 그 대화에서 더 정확한 프레이밍이 나올 때가 많아요. 리서치 설계보다 이 대화가 먼저예요.
아일라
15년째 사람과 제품 사이를 연구하고 있어요. 리서치로 프로덕트를 만들고, 가르치며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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