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별 실무3분 읽기visibility0

전 세계 면도 씬을 다 봤어요

면도기 홈유즈테스트를 진짜 많이 했는데요, 저 전 세계 면도 씬을 다 봤어요 ㅋㅋ 인도, 영국, 미국, 나이지리아... 나라마다 면도기 종류도 다르고, 면도하는 장소도, 방식도 다 달라서 그게 또 재밌더라고요.

오늘은 그 이야기를 좀 해볼게요. 면도기 이야기 같지만, 사실 이건 '사용 환경'을 전제하면 안 된다는 리서치의 핵심 교훈이에요.

인도 소도시: 침대에서 습식 면도를

우리는 면도를 당연히 화장실에서 하잖아요. 세면대 앞에 서서, 거울 보면서, 물 틀어놓고. 근데 인도 소도시에서 홈비짓을 했을 때, 이 전제가 완전히 깨졌어요.

집 안에 화장실이라는 공간이 명확하게 분리되어 있지 않은 케이스들이 있더라고요. 우리가 볼 때 주방 같이 생긴 곳의 싱크대에서 면도하는 분도 있었고요. 어떤 분은 침대에 앉아서 습식 면도를 하고 있었어요.

한국에서 침대에 앉아서 습식 면도를 하고 있다고 상상해보세요. 물 튀기고, 거품 묻고. 그게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그분한테는 그게 가장 편한 방법이었던 거예요. 화장실까지 나가는 게 더 불편한 거니까.

이걸 모르면 어떻게 되냐. 면도기를 설계할 때 "세면대 위에서 물로 씻어내기 편하게"를 전제로 만들게 되거든요. 제품 본체의 형태, 거치대 디자인, 세척 방식 — 다 세면대를 전제로 해요. 근데 세면대가 없는 사용자한테는 그 전제가 통하지 않는 거죠.

실제로 이 관찰 이후에 물 없이도 세척 가능한 구조라든지, 다양한 각도에서 잡기 편한 그립 같은 설계 방향이 나왔어요. 현장을 안 봤으면 나올 수 없는 인사이트였어요.

나이지리아: 면도는 이발소에서 하는 거예요

나이지리아는 또 완전히 달라요. 거기는 집에서 면도를 안 하더라고요. 이발소 가서 머리 자를 때 면도를 같이 해요. 이발사한테 세트로 맡기는 거예요.

이게 무슨 의미냐면, 면도기가 "개인이 소유해서 집에서 쓰는 제품"이 아닐 수 있다는 거예요. 이발사가 쓰는 도구이고, 개인 소유 면도기 시장 자체가 다른 구조인 거죠. 이걸 모르고 "개인용 면도기"로만 포지셔닝해서 들어가면 그 시장은 아예 놓치는 거예요.

이발사한테는 뭐가 중요할까요? 개인 사용자와는 기준이 완전히 달라요. 하루에 수십 명을 깎아야 하니까 내구성이 중요하고, 위생 기준이 다르고, 교체 주기도 달라요. 같은 면도기인데 타겟이 바뀌면 제품 전략이 완전히 달라지는 거거든요.

리서치 없이는 절대 모르는 것

영국에서는 이렇게 하고, 미국에서는 저렇게 하고, 인도는 이렇고, 나이지리아는 저렇고... 이 차이를 책상에 앉아서 상상할 수 있을까요? 절대 못 해요.

이게 홈유즈테스트(HUT)와 홈비짓을 하는 이유예요. 사람들이 실제로 살고 있는 환경에서, 실제로 제품을 쓰는 방식을 관찰하는 것. 한 번 써보고 평가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생활 안에서 제품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보는 거예요.

면도기 리서치를 통해 배운 가장 큰 교훈은 이거예요. "사용 환경"을 하나로 전제하는 순간, 리서치는 실패한다. 화장실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고. 본인이 쓸 수도, 이발사가 쓸 수도 있고. 그 가능성을 열어두는 게 리서치 설계의 시작이에요.

𝕏LinkedIn
A

아일라

15년째 사람과 제품 사이를 연구하고 있어요. 리서치로 프로덕트를 만들고, 가르치며 기록합니다.

© Ayla · 무단 전재 및 복제를 금지합니다.

리서치 설계, 직접 해보고 싶다면?

CoResearcher가 리서치 설계부터 설문 작성까지 함께합니다.

CoResearcher에서 시작하기arrow_forward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