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취록 어디서부터 읽어요?
처음 녹취록을 받아든 날
30장짜리 녹취록이 메일로 날아왔을 때 뭐부터 해야 할지 막막했던 경험 있으시죠? 저도 첫 프로젝트에서 그랬거든요. 인터뷰는 잘 했는데, 막상 녹취록 앞에 앉으니까 "이걸 어떻게 보고서로 만들어?"라는 생각만 들었어요.
그 막막함의 정체가 뭔지 알아요? 구조가 없어서예요. 녹취록은 대화 순서대로 쭉 흘러가는데, 인사이트는 순서대로 나오지 않거든요. 인터뷰 10분에 나온 얘기가 50분에 나온 얘기랑 연결되는 경우가 훨씬 많아요. 그래서 첫 번째 규칙: 처음부터 끝까지 선형으로 읽으려고 하지 마세요.
코딩이라고 들어봤어요? (개발자 코딩 아님)
질적 분석에서 '코딩(coding)'이라는 게 있어요. 개발자들이 하는 그 코딩이 아니에요. 텍스트에 의미 단위로 태그를 붙이는 작업이거든요.
예를 들어볼게요. 참여자가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앱을 켰는데 처음 화면에서 뭘 눌러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냥 닫았어요."
여기서 어떤 태그를 붙일 수 있을까요? 첫 화면 혼란, 행동 포기, 온보딩 실패 이렇게 붙일 수 있잖아요. 이게 코딩이에요.
코딩을 할 때 팁이 하나 있어요. 처음에는 태그를 너무 좁히지 마세요. "버튼 위치 문제"보다는 "탐색 어려움"처럼 조금 더 넓은 개념으로 붙이는 게 나중에 분류할 때 훨씬 편해요. 좁은 태그는 나중에 합칠 수 있지만, 넓은 태그는 나중에 쪼갤 수 있거든요.
포스트잇이 왜 포스트잇이어야 하냐면
코딩이 끝나면 이제 어피니티 다이어그램(affinity diagram)을 만들어요. 비슷한 것들끼리 묶는 거예요. 이게 실제로 포스트잇이든, Miro 같은 디지털 툴이든 상관없는데, 핵심은 개별 단위로 움직여야 한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분류는 선형적이지 않아서요. "이게 A 그룹인 줄 알았는데 B 그룹이네"라는 게 계속 일어나거든요. 텍스트 파일에 항목들을 나열해 두면 이런 재배치가 너무 번거로워요. 포스트잇이나 카드 형태여야 "이거 여기 붙였다가 저기 붙였다가"가 자연스럽게 돼요.
실전에서 쓰는 순서를 정리해보면 이래요.
- 녹취록을 읽으면서 의미 있는 발언을 발췌한다
- 각 발언에 짧은 코드(태그)를 붙인다
- 비슷한 코드끼리 공간적으로 모은다
- 모인 그룹에 이름을 붙인다 — 이게 주제(theme)가 된다
- 주제들 사이의 관계를 살펴본다
이 5단계가 어피니티 다이어그램의 전부예요. 거창한 방법론처럼 들리지만, 결국은 "비슷한 것끼리 묶고, 그 묶음에 이름 붙이기"예요.
주제는 발견하는 게 아니라 만드는 것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어피니티 다이어그램을 처음 하는 분들이 자주 하는 실수가 있어요. "이 데이터에서 패턴이 자동으로 나오겠지"라고 기대하는 거예요.
안 나와요.
패턴은 리서처가 해석해서 만드는 거예요. 같은 발언들을 두고도 어떤 렌즈로 보느냐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주제가 나올 수 있거든요. 그게 질적 분석의 본질이에요. 그리고 그게 불안하게 느껴진다면, 다음 편을 꼭 읽어봐야 해요.
데이터와 인사이트가 다르다는 얘기를 거기서 할게요.
아일라
15년째 사람과 제품 사이를 연구하고 있어요. 리서치로 프로덕트를 만들고, 가르치며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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